완벽한 휴가
휴가를 다녀온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엔 지체 없이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가서 뭘 할지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런 일 전문가’이다. 업무 상 인연으로 만나 좋은 친구가 된 사진가가 있는데 그는 취미와 일 중간쯤에서 캠핑과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긴다. 떠나기로 결심한 후, 무작정 그에게 톡을 보내 두서없는 다짐을 선포했다.
"이번엔 캠핑을 가보려고요."
늘 그렇듯, 일은 준비하면서 점점 커진다.
강원도 산자락에 부모님이 주말에만 사용하시는 집이 있으니 평일에 시간이 된다면 그곳을 써도 좋다는 회사 동료의 말에, 그렇다면 ‘평일에 1박 2일로 시간을 내어 강원도까지 다녀올 핑계가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쌈박한(?) 촬영 안을 만들어서 야외촬영을 가야겠군, 싶었다. 촬영용 음식도 먹을 수 있으니 따로 먹거리를 준비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딱이다 싶었다. 게다가 촬영이라는 공식적 업무를 이유로 캠핑 전문가(위에 등장한 사진가)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완벽한 휴가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사진가(이자 캠핑 전문가)와 영상을 담당하는 피디, 그리고 우리 회사 정식 개사원이자 나의 반려견까지 대동해 3인+1견 촬영팀을 꾸렸다. 먼저 잡아놓은 일정엔 며칠 전부터 비 소식이 있더니 예보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촬영을 2주 미루게 되었다.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두고 매일 스마트폰 날씨 앱을 들여다보며 전전긍긍한 보람이 있는지, 떠나는 날의 아침엔 하늘도 맑고 바람도 꽤나 선선했다. 새벽에 일어나 자질구레한 촬영 소품들을 챙기고 강아지까지 태워 3시간을 쉼 없이 달렸는데도, 수묵화처럼 드리운 태백산맥의 절경이 그저 좋기만 했다.
비가 그친 뒤의 태양은 더 뜨겁다.
찾아간 곳은 산속 깊이 자리한 아담한 주택이었는데, 해가 빨리 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일찍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솔직해지자. 실은 빨리 끝내고 촬영용 고기로 바비큐 파티며 얼음 통 그득한 맥주 하며 캠핑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게 더 컸다. 도착하자마자 준비한 대로 착착 촬영이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한 시간을 채 못 넘기고 우리는 대대적인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직 오전인 시간이었음에도 태양이 그야말로 작열하고 있었다.
촬영팀의 컨디션도 걱정이었지만, 제일 문제는 촬영용으로 챙겨온 제품 샘플과 식재료들이 하염없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야채에 생기를 더하려고 물을 뿌리면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증발해버리고, 고기는 금세 냉기를 읽고 지방이 녹아내렸다. 연출 컷 하나를 찍고 나면 사람도 식재료도 시원한 곳에서 30분 이상을 쉬어줘야 하는 날씨에 미련하게 맞서지 않기로 했다. 야외촬영은 원래 그런 거라며, 그래서 매번 나올 때마다 다시는 안 나오겠다 다짐하면서도 스튜디오로 돌아가 몇 개월 촬영하다 보면 다시 또 슬금슬금 기어 나오게 되지 않냐며 진심 섞인 농을 주고받으며 쉬엄쉬엄 촬영을 이어나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해 질 녘까지 이어진 사진과 영상 촬영, 그리고 촬영만큼 힘든 뒷정리(!)에 우리는 완전히 녹다운이 되어 캠핑이고 뒤풀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셀프 따귀를 때려가며 다시 세 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나의 자취방.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사발면에 캔맥주를 먹고 있자니 드는 생각. ‘휴가를 대체 왜 가는 거야? 집이 최곤데.’
캠핑은 없었지만, 인생 고기는 찾았다.
이번 촬영은 기획 단계부터 ‘휴가 갈 때 이런저런 음식들 사 가시면 편리하고 맛있게 드실 수 있어요!’ 풍의 글을 쓰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이 글도 원래대로라면 캠핑장에서 아무 고기나 먹지 말고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구워 드시라는 설득 조의 내용이 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필자는 하지도 않은 캠핑 후기 대신, 너무도 강렬해서 모든 가식과 두꺼운 가면을 뚫고 튀어나온 두 가지 진심을 적기로 했다.
하나. 여름에 야외촬영은 (특히 모닥불을 코앞에 두고 촬영해야 하는 촬영은) 절-대 하지 말자.
둘. 우리가 만든 거지만, 더에이징 숙성육 진짜 맛있다.
2년 정도의 브랜드 준비기간부터 작년 11월 더에이징을 론칭하고 지금까지 상당량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먹어왔지만, 자부하건대 이번 촬영에서 구워 먹은 고기가 살면서 먹은 고기 중에 가장 맛있었다. 숯불구이, 직화구이로 먹은 게 처음도 아니고, 심지어 땡볕 촬영에 땀을 너무 흘린 나머지 입맛도 없던 상황이었는데도 이렇게 맛있을 수가! 판매하는 상품을 이렇게 대놓고 인생 고기라니 맛있다니 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진정성을 더하기 위해 촬영을 망칠뻔한, 혹은 촬영을 핑계로 떠난 휴가를 망친 이야기까지 앞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았는가. 진심이니 믿어주시길 바란다. 이번 촬영에서 구워 먹은 더에이징 위치타 7*, 투움바 15**, 캔자스 21*** - 특히 위치타! 나의 인생 고기에 등극했다.
지금까지 더에이징이라는 브랜드와 숙성육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브랜드를,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촬영은 더없이 완벽한 휴가였다. 원래 여행이란 그런 일인가 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서 고생'해서 맛있는 거 먹고, 잘 돌아오는 일.
긴 장마가 끝나고, 당신의 휴가도 더없이 완벽하기를.
완벽한 휴가
휴가를 다녀온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엔 지체 없이 떠나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가서 뭘 할지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런 일 전문가’이다. 업무 상 인연으로 만나 좋은 친구가 된 사진가가 있는데 그는 취미와 일 중간쯤에서 캠핑과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긴다. 떠나기로 결심한 후, 무작정 그에게 톡을 보내 두서없는 다짐을 선포했다.
"이번엔 캠핑을 가보려고요."
늘 그렇듯, 일은 준비하면서 점점 커진다.
강원도 산자락에 부모님이 주말에만 사용하시는 집이 있으니 평일에 시간이 된다면 그곳을 써도 좋다는 회사 동료의 말에, 그렇다면 ‘평일에 1박 2일로 시간을 내어 강원도까지 다녀올 핑계가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쌈박한(?) 촬영 안을 만들어서 야외촬영을 가야겠군, 싶었다. 촬영용 음식도 먹을 수 있으니 따로 먹거리를 준비해 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딱이다 싶었다. 게다가 촬영이라는 공식적 업무를 이유로 캠핑 전문가(위에 등장한 사진가)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은가. 여러모로 완벽한 휴가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사진가(이자 캠핑 전문가)와 영상을 담당하는 피디, 그리고 우리 회사 정식 개사원이자 나의 반려견까지 대동해 3인+1견 촬영팀을 꾸렸다. 먼저 잡아놓은 일정엔 며칠 전부터 비 소식이 있더니 예보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촬영을 2주 미루게 되었다.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두고 매일 스마트폰 날씨 앱을 들여다보며 전전긍긍한 보람이 있는지, 떠나는 날의 아침엔 하늘도 맑고 바람도 꽤나 선선했다. 새벽에 일어나 자질구레한 촬영 소품들을 챙기고 강아지까지 태워 3시간을 쉼 없이 달렸는데도, 수묵화처럼 드리운 태백산맥의 절경이 그저 좋기만 했다.
비가 그친 뒤의 태양은 더 뜨겁다.
찾아간 곳은 산속 깊이 자리한 아담한 주택이었는데, 해가 빨리 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일찍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솔직해지자. 실은 빨리 끝내고 촬영용 고기로 바비큐 파티며 얼음 통 그득한 맥주 하며 캠핑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게 더 컸다. 도착하자마자 준비한 대로 착착 촬영이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한 시간을 채 못 넘기고 우리는 대대적인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직 오전인 시간이었음에도 태양이 그야말로 작열하고 있었다.
촬영팀의 컨디션도 걱정이었지만, 제일 문제는 촬영용으로 챙겨온 제품 샘플과 식재료들이 하염없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야채에 생기를 더하려고 물을 뿌리면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증발해버리고, 고기는 금세 냉기를 읽고 지방이 녹아내렸다. 연출 컷 하나를 찍고 나면 사람도 식재료도 시원한 곳에서 30분 이상을 쉬어줘야 하는 날씨에 미련하게 맞서지 않기로 했다. 야외촬영은 원래 그런 거라며, 그래서 매번 나올 때마다 다시는 안 나오겠다 다짐하면서도 스튜디오로 돌아가 몇 개월 촬영하다 보면 다시 또 슬금슬금 기어 나오게 되지 않냐며 진심 섞인 농을 주고받으며 쉬엄쉬엄 촬영을 이어나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해 질 녘까지 이어진 사진과 영상 촬영, 그리고 촬영만큼 힘든 뒷정리(!)에 우리는 완전히 녹다운이 되어 캠핑이고 뒤풀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셀프 따귀를 때려가며 다시 세 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나의 자취방.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사발면에 캔맥주를 먹고 있자니 드는 생각. ‘휴가를 대체 왜 가는 거야? 집이 최곤데.’
캠핑은 없었지만, 인생 고기는 찾았다.
이번 촬영은 기획 단계부터 ‘휴가 갈 때 이런저런 음식들 사 가시면 편리하고 맛있게 드실 수 있어요!’ 풍의 글을 쓰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이 글도 원래대로라면 캠핑장에서 아무 고기나 먹지 말고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구워 드시라는 설득 조의 내용이 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필자는 하지도 않은 캠핑 후기 대신, 너무도 강렬해서 모든 가식과 두꺼운 가면을 뚫고 튀어나온 두 가지 진심을 적기로 했다.
하나. 여름에 야외촬영은 (특히 모닥불을 코앞에 두고 촬영해야 하는 촬영은) 절-대 하지 말자.
둘. 우리가 만든 거지만, 더에이징 숙성육 진짜 맛있다.
2년 정도의 브랜드 준비기간부터 작년 11월 더에이징을 론칭하고 지금까지 상당량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먹어왔지만, 자부하건대 이번 촬영에서 구워 먹은 고기가 살면서 먹은 고기 중에 가장 맛있었다. 숯불구이, 직화구이로 먹은 게 처음도 아니고, 심지어 땡볕 촬영에 땀을 너무 흘린 나머지 입맛도 없던 상황이었는데도 이렇게 맛있을 수가! 판매하는 상품을 이렇게 대놓고 인생 고기라니 맛있다니 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진정성을 더하기 위해 촬영을 망칠뻔한, 혹은 촬영을 핑계로 떠난 휴가를 망친 이야기까지 앞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않았는가. 진심이니 믿어주시길 바란다. 이번 촬영에서 구워 먹은 더에이징 위치타 7*, 투움바 15**, 캔자스 21*** - 특히 위치타! 나의 인생 고기에 등극했다.
지금까지 더에이징이라는 브랜드와 숙성육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브랜드를,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촬영은 더없이 완벽한 휴가였다. 원래 여행이란 그런 일인가 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서 고생'해서 맛있는 거 먹고, 잘 돌아오는 일.
긴 장마가 끝나고, 당신의 휴가도 더없이 완벽하기를.